북쪽 높고 남쪽 낮은 지세 활용…대전 분지서 동방 진출 감제 전략 거점

▲ 대전시 기념물 제8호 질현성은 동구 비래동에서 동구 추동으로 넘어가는 질티재 북쪽 산 정상에 자리잡고 있다.이 성은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계속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백제 부흥 운동군의 거점이었던 지라성(支羅城)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 시티저널 허송빈 기자 ] 질현성은 대전 분지 동쪽 경계가 되는 계족 산지가 북서쪽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오다 남북 방향으로 바뀌는 대덕구 비래동에 위치하고 있다.

최고봉인 표고 334m 고지를 비롯한 몇 개의 산봉우리와 그 남쪽 기슭을 아우르는 삼태기 모양의 포곡식(抱谷式) 산성이다.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지세를 활용한 성의 둘레는 약 800m며, 동·서·남 3곳에 문지(門址)가 있다.

이 곳의 바로 남쪽에는 대전에서 옥천 등지의 동쪽으로 통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치 고개(迭峴)가 있다.

한 눈에 이 곳을 감제(瞰制)하기 위해 축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산성 이름도 바로 이 고갯길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질현성과 계족산성 사이의 능선 상에는 100~200m 간격으로 모두 6개의 보루를 설치했고, 그 이남의 능선에는 다수 산성을 배치했다.

길치를 지키는 질현성을 필두로 능성(陵城)과 갈현성(葛峴城) 사이의 비름 고개, 갈현산성 남쪽의 갈고개, 삼정동산성(三丁洞山城) 남쪽의 판암동에서 옥천군 방면으로 이어지는 통로 등에 각각 대응하고 있다.

질현성은 그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성으로 대전 분지에서 동방으로 진출하는 길목을 감제하는 전략 거점성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전략적으로 중요한 산성임에도 불구하고 계족산성에 비해 덜 주목받았던 질현성은 최근 성벽이 수목으로 훼손하는 것을 방지하고 멀리서도 조망이 가능하도록 산성 주변 수목 제거 사업을 실시했다.

현재 산성에 올라보면 성벽을 중심으로 5~20m 안팎을 벌목해 산성의 규모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성벽 가운데 원래의 모습으로 여겨지는 부분을 보면 입면 모양이 장방형인 성돌로 위아래가 나란하게 쌓았다.

이는 계족산성을 비롯한 신라가 처음 쌓은 산성의 축조 기법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성 안에서는 기와를 비롯한 백제의 유물도 확인되고 있고, 바로 인접한 곳에 위치한 고봉산성은 전형적인 백제 기법으로 축조해 성의 축조와 점용의 주체가 바뀌었던 사정을 말해 주고 있다.

계족산성은 6세기 후반경 신라가 초축한 이후 7세기 전·중엽에 백제가 점유한 것으로 확인돼 질현성 역시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이 성은 백제 부흥군의 거점 가운데 하나로 삼국사기(三國史記) 등의 문헌 사료에 기록된 지라성(支羅城) 혹은 지리성(支離城')으로 비정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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